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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서 행하라(3) 환대(요한3서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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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에게 가이오는 사람을 받은 자요, 축복기도를 받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진리안에서 행하는 삶은 나그네를 환대(hospitality)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라(3) 환대(요한3서1-12)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에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준비하여 멀고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와서 영접하고 경배를 하면서 환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을 하였을 때에는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하여 새벽 미명에 찾아와 경배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며 환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하는 가이오는 예수님을 만나 변화를 받아 진리의 사람이 되었고 요한 사도를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과 가이오와의 관계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사도 요한에게 가이오는 어떤 사람인가요?

 

1.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1-2상).

 

1절에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요한3서에 사랑하는 자라는 칭호가 5번 소개되고 있습니다.

장로인 사도요한은 가이오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가이오가 어떤 사람이기에 사도요한이 그토록 사랑하는 걸까? 가이오가 사도요한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행하는 자였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런 가이오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소개되고 있는 그 당시 가이오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로마식 이름 중 하나였었는데 그 이름의 의미가 ‘기뻐하는 자’였고, 이방인이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행함으로 자신의 이름처럼 장로인 요한사도에게 기쁨이 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헬라어 ‘아가페토’란 단어를 사용하지요 이는 가이오에 대해 진리 안에서 또는 진리 때문에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 희생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왕이 술람미 여인을 호칭하기를 ‘나의 사랑 어여쁜 자여...“라고 부르시면서 들로 포도원으로 가자고 하시면서 그곳에서 나의 사랑을 주리라고 합니다. 신약에 나사로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러하듯이 요한은 가이오를 나의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릅니다.

 

2. 사도 요한은 그를 위해 축복기도하고 있습니다(2).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지금 요한사도는 사랑하는 가이오를 축복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여기서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은 사도요한처럼 다른 사람을 부지런히 축복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준다는 겁니다. 축복이란 한문으로 ‘빌 축’ ‘복 복’이거든요 그러니까 ‘복을 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습니까?

내용인즉 내 영혼일 잘 됨 같이, 그 다음 이어지는 축복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는 ‘좋은 길로 인도 받다’ 또는 ‘즐거운 여행을 하다’ ‘성공하다’ 또는 ‘번영하다’라는 경제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범사란 모든 일이잖아요 뭡니까? 만사가 잘 되라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뭡니까? 사도요한은 가이오가 모든 면에서 최상의 복을 누리기를 하나님께 기도로 복을 빌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강건하라’ 했는데 이 말은 ‘건강하게 있다’ 또는 ‘건강이 좋다’라는 의미로 장로인 사도요한은 가이오가 영혼이 잘 된 것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건강과 사회적 성공도 함께 하기를 기도로 축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삼중축복이요 온전한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요한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영혼뿐만이 아니라 현세적인 필요들까지도 잘되기를 바라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합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 조상으로서 복을 받도록 믿으므로 침상을 기대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위해서 민수기 6장에서 축복하였고 바울도 교인들을 축복하였듯이 사도 요한도 가이오를 축복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서로를 축복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로 요한의 기쁨이 되었습니다(3)

.

장로인 사도요한은 진리를 소유하고 진리를 믿으며 진리를 행하는 진리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가이오가 어떤 사람인가요? 3절에 뭐랍니까? 형제들이 와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뭡니까? 가이오도 역시 장로인 사도요한처럼 진리의 사람이었다는 거잖아요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아가페사랑이지요 그렇습니다. 진리엔 한 몸처럼 아가페사랑이 따라가고 있구나 그래서 장로인 요한사도는 가이오가 진리로 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를 아가페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3절을 볼까요?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이 말씀을 다시 직역을 한다면 이렇습니다. “내가 몹시 기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형제들이 와서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의 마음이 보통 기쁜 것이 아니라 심히 기뻤다는 겁니다. 가이오 뿐만이 아니지요 오늘날도 진리를 믿고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롬14:18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만약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위선자가 된다는 거지요 진리를 소유한 자는 진리로 살아야 맞지요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오늘 본문의 사도요한에게 이처럼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 4절에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그리고 바로 전 편지 요한2서4절에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사도요한을 기쁘게 한 사람은 죽었다가 산 사람도 아니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었었다는 겁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인 가이오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그 신앙으로 본받아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 소원이 이뤄지리라(시37:04절)입니다. 믿는 우리의 소원을 무엇입니까? 나 주의 기쁨 되기 원하네. 할렐루야!!

 

 

Ⅱ.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본문에서는 환대(hospitality) - 정성껏 대접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은 좁은 마음을 열고 귀한 분을 영접하고 정성껏 대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은 두 가지의 사람을 실례로 들면서 본받으라고 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디오드베레입니다.

 

1. 환대를 실천한 사람은 가이오입니다(5절)

 

기이오는 어렵고 육신적으로 약한 가운데 있었지만 그 당시 어렵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인 나그네를 영접하고 환대하여 여비까지 주는 선을 행하였습니다.

 

미국의 대형 교회 근처에서 한 노숙자가 초라한 행색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불과 세 명에 불과했고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성전 맨 앞자리에 앉으려 하였으나 예배 위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석에 겨우 눈치를 보며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광고 시간이었습니다“오늘 새로 우리 교회에 부임하신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죠”

교인들은 모두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모든 성도들은 경악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그가 바로 이 교회에 새로 부임한 스티 목사 (노숙자)였습니다. 그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로 누가 양과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교인들 중엔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님의 제자 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주위에 힘없다고 무시하고 외면한 사람은 어쩌면 예수님이 보낸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심판대에서 하나님이 일일이 물어볼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말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브라함과 롯의 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13:1-2절에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답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식을 얻게 되는 일이 있게 되었으며 롯도 구원을 받고 소돔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라합도 그렇습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군을 영접하였고 그들에게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였으며 정성껏 환대를 하여 무사히 돌아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의 가족과 친족까지라도 다 구원을 받고 여리고에서 살게 되었던 것을 보면 환대는 복을 받는 기회입니다.

탕자가 돌아와 일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환대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자격이 없었지만 이런 환대를 통하여 다시 돌아와 관계가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특별히 사랑과 환대를 받을 만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주님의 사랑과 환대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가정도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관리하며 누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환대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전하시고 예배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셔서 천국에 가도록 환대를 해 주셨으며 성령님도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고아처럼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2. 진리 안에서 사랑이 없이 살고 있는 디오드레베입니다(9-11절).

 

교회 안에서 으뜸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편지를 썼던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② 비방하고 험담하였습니다. ③ 왕따를 시켰습니다.

④ 배척합니다. ⑤ 오히려 내 쫓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요한은 악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본받지 말하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요즘 현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저희 집 부엌을 가이오카페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환대(정성껏 영접하여 대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대접하는 것 이웃을 환대하는 가이오 같은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고 기쁨이 되는 은혜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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