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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근 칼럼>천리마의 능력은 먼 길을 가봐야 알고, 사람의 마음은 어려움에 처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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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병오년은 붉은 말의 힘찬 기상과 에너지가 넘치는 해입니다.
천리마는 왜 천리를 달리지 못했을까요?
동양 철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드물다.”
아무리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라도, 알아보는 눈이 없으면 마굿간에서 풀만 먹다 생을 마친다는 뜻입니다.
천리마의 비극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천리마입니까, 아니면 아직 마굿간에 묶인 말입니까?”

중국 근현대 화가 쉬베이훙은 평생 말을 그렸습니다.
그의 명화 〈奔马图〉(달리는 말) 속 말들은 고삐가 없습니다.
근육은 터질 듯 팽팽하고, 땅을 박차는 말발굽에서는 자유가 튀어 오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잘 그렸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말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억눌린 인간의 혼을 그렸을 뿐입니다.”
천리마는 그림 속에서야 비로소 천리를 달립니다.
현실에서는 묶여 있어도, 정신만은 먼저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천리마는 천 리를 달려봐야 그 진가를 안다”는 말이 있다. 즉,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실제로 먼 길을 달려보지 않으면 그 능력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말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평소엔 번듯하고 인품 좋아 보이던 사람이 막상 위기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도 하고, 반대로 별 존재감 없던 사람이 중요한 때에 갑자기 슈퍼맨처럼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내 친구 영식이는 평소엔 그저 그런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몇 년 전 그가 차를 타고 가다가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진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이런… 어쩌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정비공처럼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퀴를 갈아 끼우더니, 마지막엔 “이 정도야 뭐~”라며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순간 ‘아, 천리마는 먼 길을 가봐야 안다더니, 영식이도 위기를 겪어봐야 진가를 아는구나’ 하고 감탄한 적 있습니다.

 

반면, 늘 자신만만하던 친구 민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허당임이 탄로 났습니다. 해외여행을 가서 공항에서 길을 잃었는데, 평소엔 “나만 믿어”를 입에 달고 살던 그가 갑자기 손에 땀을 쥐고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야… 우리 어떡하지?”라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평소에는 리더처럼 보였지만, 정작 비상 상황 돌발하자 내비게이션보다 못한 친구였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도, 말도, 물건도 실제로 써보고, 경험해 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 누가 당신의 진짜 천리마인지, 누가 허당인지, 그때서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그날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어쩌면 당신 옆의 ‘평범한’ 친구가 위기의 순간, 기적처럼 달려와 당신을 구해줄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도 분명한 천리마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모세입니다.
그는 왕궁에서 자랐지만, 말더듬이였고 도망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스스로를 천리마라 생각한 적이 없지만,
부르심 앞에서 멈추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둘째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방향이 바뀝니다.
이후 그는 쉬지 않고 달립니다.
배고픔, 매맞음, 감옥…
그러나 그의 고백은 단순합니다.
“나는 달려갈 길을 마쳤다.”

 

천리마는 빠른 말이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말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마굿간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천리마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백락을 못 만났거나, 스스로 고삐를 풀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천리마는 “누가 알아줄까?”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나는 한 걸음 더 달렸는가?”
오늘, 천 리는 아니어도
한 발굽만큼은 달려봅시다.
우리들의 천리마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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