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어린 시절 운동장에는 먼지가 펄펄 날렸고, 아이들은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그리고 목숨 걸고 “땅따먹기”를 했습니다.
나뭇가지로 운동장 바닥에 선을 긋고, 손가락으로 납작한 돌멩이를 팅기며 “여기부터 내 땅!” 하며 영토를 넓혀가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떤 친구는 운동장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으스댔습니다.
“야! 여긴 다 내 땅이다!”
그러면 작은 땅 가진 아이가 억울한 얼굴로 말합니다.
“너 혼자 다 가지면 어떡하냐!”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
“땡—땡—땡—!”
학교 종이 울리는 순간, 아이들은 방금 전까지 죽기 살기로 지키던 땅을 버리고 교실로 뛰어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내 땅!” 외치던 운동장은 순식간에 다시 우리 모두의 흙바닥이 되었습니다.
누가 많이 가졌는지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운동장의 왕도, 거지도
종이 울리면 똑같이 원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평생 더 큰 땅, 더 많은 건물, 재산을 가지려고 달려갑니다.
하지만 인생의 종이 울리는 순간, 결국 아무것도 들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갑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인간은 잠시 맡아 사는 관리자일 뿐인데, 영원히 자기 것인 줄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에서 욕심 많은 친구가 꼭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도 내 땅! 저기도 내 땅!”
그러다가 욕심내다 선 밟고 넘어져 자기 땅까지 몽땅 빼앗기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욕심부리더니 다 날아갔네!”
어쩌면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놀이 속에도 인생의 지혜를 숨겨두신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움켜쥐지 말고
조금은 나누며 살라고.
잠시 맡은 땅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종소리는 문명을 움직였습니다.
고대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종이 왕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왕궁의 종이 울리면 백성은 모였고, 군대는 움직였습니다.
불교에서는 범종이 수행의 시작을 알렸고, 교회에서는 종탑이 마을의 시간을 지배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질서를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적군이 오면 종을 미친 듯 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피신했습니다.
반대로 전쟁이 끝났을 때도 종은 울렸습니다.
그래서 종은 참 묘합니다.
같은 소리인데 어떤 날은 공포가 되고, 어떤 날은 희망이 됩니다.
인간의 말도 그렇습니다.
같은 입인데 누군가는 독을 뿜고, 누군가는 꽃을 피웁니다.
땡땡땡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는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쇳소리가 아닙니다.
옛사람들에게 종소리는 “하늘의 부름”이었습니다.
새벽 종은
“잠든 영혼아 깨어나라”는 의미였고,
정오의 종은
“바쁜 삶 속에서도 잠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뜻이었으며,
저녁 종은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쉬라”는 위로였습니다.
특히 유럽의 오래된 마을에서는 교회 종이 마을의 심장 역할을 했습니다.
기쁜 결혼식에도 울리고, 슬픈 장례식에도 울렸습니다.
전쟁이 나면 경고의 종이 되었고, 평화가 오면 감사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 종은
“인간의 시간”보다
“하늘의 시간”을 먼저 기억하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성경 속 “종소리 같은 부르심”이 있습니다.
잠꾸러기 선지자 요나
하나님이 어느 날 요나를 불렀습니다.
“요나야!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전해라!”
쉽게 말하면 하늘의 종소리가 울린 것입니다.
“땡땡땡~ 출동!”
그런데 요나는 “싫어요!” 하며
정반대 방향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마치 학교 종이 울렸는데 교실 대신 PC방으로 달아나는 학생 같았습니다.
결국 큰 폭풍이 몰아쳤고,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누가 하나님 말씀 안 듣고 튄 거야?!”
그런데 배 밑창을 보니 요나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남들은 죽겠다고 물 퍼내는데 혼자 코 골며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캄캄한 물고기 배 속에서 요나는 깨달았고
결국 니느웨로 가서 사명을 다합니다.
인생에는 도망쳐도 계속 울리는 종소리가 있습니다.
양심의 종소리, 사명의 종소리, 사랑의 종소리입니다.
그 종소리를 안 들으려 해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울립니다.
“땡땡땡~ 너 지금 어디 가니?”
욕심 속에서 종소리를 들은 삭개오
삭개오는 부자였고 세리장이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건물도 땅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 틈에 갔는데 앞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이고 뭐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돈 많은 어른이 나무 타는 모습이라니 참 웃깁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겁니다.
“세리장이 원숭이 됐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무 아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하늘의 종소리가 울린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삭개오는 완전히 변합니다.
“내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겠습니다!”
돈만 붙잡고 살던 사람이 사람을 품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삭개오는 큰 땅보다 더 중요한 걸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입니다.
재산은 죽을 때 놓고 가지만, 사랑은 사람 마음속에 남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국 시인 John Donne 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이 말은 나중에 Ernest Hemingway 의 소설 For Whom the Bell Tolls 로도 유명해졌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한 사람의 고통은 결국 모두의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Vincent van Gogh 의 작품 The Church at Auvers 을 보면 검푸른 하늘 아래 교회가 흔들리는 듯 서 있습니다.
고흐에게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외로운 영혼이 돌아가고 싶은 집”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림 속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인간에게 묻는 듯합니다.
“너는 욕심의 길로 갈 것이냐, 사랑의 길로 갈 것이냐?”
또 Jean-François Millet 의 The Angelus 는 들판에서 종소리를 듣고 기도하는 농부 부부를 보여줍니다.
“땡땡땡”
종이 울리자 농부는 삽을 내려놓고, 아내도 바구니를 멈춘 채 고개를 숙입니다.
밀레는 말합니다.
“먹고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얼마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Leo Tolstoy 는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얼마인가?”
그는 같은 제목의 우화에서 끝없이 땅을 탐하던 사람이 결국 해 질 무렵 쓰러져 죽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그를 묻기 위해 판 땅의 크기는 고작
“한 사람 누울 무덤 크기”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조용히 묻습니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얼마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하십니까?
얼마만큼의 땅을 갖고 싶으십니까?
운동장 절반쯤이면 충분하신가요?
아니면 지구전체의 땅을 갖고 싶으신가요?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학교 종이 울리면 운동장이 끝났듯,
인생의 종이 울리면 소유의 게임도 끝납니다.
그날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땅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따뜻한 울림을 남겼느냐일 것입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학교 종은 하늘의 종은 땡땡땡 울리고 있습니다.
땡땡땡!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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