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새 정부가 「서울 대학교를 10개 만들겠다」고 한다. 이유는 초·중·고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모두 서울대를 목표로 하니 사교육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하려면 ‘각도에 있는 국립대학의 학교 명칭을 이참에 <서울대>로 고치고, 평준화시키면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 재정일 텐데, 그 재정을 어디서 충당한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한반도 끝자락에 서울대를 만든다고 치자. 교수의 질이나, 학생들의 질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서울의 서울대와 지방의 서울대가 같아지겠는가? 그러니 이러한 발상 자체가 공산주의적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지금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경기 일원에 살고 있고, 지방은 소멸되고 있는 형국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가 모두 폐교되고 있는 이때, 지방에 서울대를 만들면 해결된다고? 참으로 꿈같은 소리이다.

새 정부의 어느 교육 이상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는 UCLA, UCBerkeley 등 여러 개의 캘리포니아 대학이 있으나 수준은 같다는 것을, 그 예로 제시하고 있단다. 그러나 미국의 명문대는 모두가 사립대학교이다.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 등의 아이비리그(Ivy League)의 모든 대학은 사립대학으로, 우수한 교수진과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은 국립대학 자체가 없고, 주정부 대학이 있다.
그런데 주정부에서 세운 대학은 사립대학에 비해 수준은 낮고, 학생들의 질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서울 대학교를 10개 만들겠다’ 프로젝트는, 서울 대학교와 똑같은 재정을 투입해서 만들면 서울대학교와 같은 수준이 되고, 그리되면 서울에 있는 서울 대학교에 굳이 갈 필요가 없어지니 사교육이 사라질 것이고, 지방은 살아나고 지방 경제는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총장 출신의 어느 분의 연구라고 한다.
뜻은 좋지만, 지금의 서울 대학교도 세계 100등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터에,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사실 지방 국립대도 재정 악화와 학생 모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숫자는 채운다 해도, 옛날 같으면 대학 근방에도 못 올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다. 지방 인구가 점점 감소 되는 시점에, 서울대 10개를 만들면 지방이 살아나고 공교육이 정상으로 될 것이라는 발상은 참으로 순진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발상 그 저변에는, 이른바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번 따져보자! 서울대학교도 우리가 세운 대학이 아니다. 이른바 일본의 침략 때 세운, <일본 경성 제국대학교>가 지금의 서울 대학교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하는 가문의 수제들이 몰려왔고, 조국이 해방되자 서울 대학교는 국립대학이 되어 엘리트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초기 선교사들과 애국지사들이 세운 학교들이 많았다. 연세대, 고려대, 숭실대, 이화여대, 건국대, 계명대 등의 사학들이 한국의 사회와 정치, 경제, 사회의 인물들이 대거 나왔다.
한편, 서울 대학교의 법대, 의대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하나의 카르텔을 이루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세력들이 되고 있다. 그래서 <법조 카르텔> <의료 카르텔> <정치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있고, 동문 들끼리 밀어주고, 댕겨주고 거대한 세력들을 형성하여 그것이 법이고 진리가 되었다. 필자도 평생을 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여러 번 총장을 해봤고, 1980년대 초에는 <문교부 정책 자문위원>도 지냈다. 그때는 대학이 100여 개뿐이었다. 그 후에 부패한 관료들과 부패한 대학 주인들의 로비를 통해, 단과대학은 모두가 종합대학이 되었고, 전문대학들도 모두가 4년제 종합대학이 되었다. 그리고 총장들은 건물 짓기에 올인 했다. 땅의 평수와 건물의 크기가 바로 대학인 것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교 수는 300여 개가 된다. 대학이 바겐세일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방에 있는 학교들이 점점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짐으로, 이제는 아무나 다 대학에 가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대학들은 머리 숫자를 채우기 위해, 중국인들을 때 거리로 들여와서 학적만 걸어놓고, 낮에는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게 하고 있단다. 대학의 위기와 재정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영국에는 숫자는 적어도 알찬 대학이 있고, 미국에는 명문 기독 대학들이 많이 있다. 예컨대 칼빈 칼리지, 제네바 칼리지, 돌트 대학 등 기독교 사상을 가르치는 명문대학에 학부 형들과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그러니 덩치만 큰 대학교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화란의 A. 카이퍼는 5명의 학생과 5명의 교수로 시작하여, 지금은 개혁주의 일꾼을 양성하는 최고의 학교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서울대 10개 만들겠다는 발상보다 더 시급한 것은, 세계적 실력을 갖춘 교수들의 가르침과 간판을 따려는 학생보다, 진정으로 학문을 하고 바른 세계관을 가진 학생들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교육에도 두 가지 곧 중생자와 비중생자의 가르침이 있다. 중생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사역을 하겠지만, 비중생자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으로 사역할 것이다.
10개의 서울 대학을 만들어 사교육을 뿌리 뽑고 대학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어리석은 발상을 거두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