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칼럼>다윗의 뿌리

  • 등록 2025.12.22 13: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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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또다시 한해의 끝자락에 와있다.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것만 해도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러면서 자꾸만 12월 달 카렌다를,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보게 된다. 설렘으로 시작한 한 해가 짙은 아쉬움으로 몰려온다. 올해는 말 그대로 격동의 한 해를 보냈다. 탄핵, 반탄 등으로 서로서로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어물쩍 정권이 바뀌더니,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오버렙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성탄절은 우리들 코 앞에 왔고, 새해도 가까이 와 있다.

 

그제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오후 예배 때, 설교를 하게 되었다. 평생을 설교만 해왔던 필자지만, 설교란 항상 새로운 상황과 생명의 말씀이 만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오래 하면 익숙해지고, 도(道)를 통하게 된다고 하지만, 설교는 늘 낯설고 설레 일 뿐 아니라, 긴장이 있게 마련이다. 설교자로 나는 성탄과 연말에 주는 메시지를 무슨 본문과 무슨 주제를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설교를 60년 했어도 아직도 늘 초보라고 생각된다. 일찍이 카이퍼(A. Kuyper) 박사는 “설교는 만남이다!”라고 했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중매함이라>고 했듯이, 생명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성도들에게 만나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신랑, 신부를 중매하려면, 신랑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지만, 신부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과 죄인으로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잘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지도 잘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놀라운 벅찬 감격이 일어나 죄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설교를 너무 잘하려는 과욕을 부리면, 예수도 없고, 십자가도 없는 생명 없는 설교가 되기 쉽다. 역대 학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쉬운 설교가 좋은 설교다!’라고 정의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12월 마지막 주 그리고 성탄을 앞두고, 성경의 가장 끝에 있는 <요한 계시록>에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계시록의 마지막 장 22장을 찾았다. 1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읽으면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를 볼 수 있었다. 거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계시 되어 있다. 그래서 성탄과 연말 설교에 가닥이 잡혔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찬양이 터졌다. 나는 성탄 설교를 복음서에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본 것이다. 성경의 종지부를 찍고, 승리의 나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계시록 22:1절에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비유되고 있다. 사실상 성경은 어린양에서 시작해서, 어린양으로 끝을 맺는다. 구약에서 어린양은 속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고 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사람을 소개할 때, 양이나 돼지나, 말이니 한다면, 큰 실례가 될 뿐 아니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요단강에 모여든 군중들은 그 의미를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대중들은 예수님이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구원할 구주이심을 알게 되었다. 사실 예수님의 성탄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이런 명쾌한 진리는 성경에 엄청 많다. 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성탄과 연말을 예수 그리스도로 끝을 맺어야 할 이유이다. 그리고 새해도 예수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의 계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찌어찌해서 세상에 왔고, 어찌어찌하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밝힌 대로 <다윗의 뿌리>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거지 바디메오는 비록 눈은 안보여도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군중들은 그의 고함 소리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새의 줄기> <다윗의 자손>으로 구주가 오신다는 것은, 신·구약 66권의 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윗의 뿌리로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스케줄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2025년 성탄과 마지막 주를 앞에 두고, 동방 박사와 별도 중요하고 베들레헴도 소중하지만,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대로 오신 <어린양>이며, <다윗의 뿌리>라는 것을 확신했으면 한다.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Yes I am Coming Soon)>라고 했다. 성탄이 있기에 십자가도 있고, 우리의 속죄도 있고, 부활도, 재림의 소망도 있는 것이다.

 

성탄을 기점으로 잠시 잠깐이면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면서, 죄와 세상을 짓 뭉기고 살았으면...

 

 Merry Christmas!

강은민 기자 rkddmsals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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