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그리운 내고향 경남 합천군 삼가면 동리 초등학교 시절 비가 너무 많이와서 냇물이 불어 그 냇물에 다리가 잠기면 금이야 옥이야 귀한 어린학생들이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갈까봐 선생님께서는 공부를 중지하고 어린 학생들을 일찍 집에 보내주곤 했습니다.
걱정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어린 악동들은 공부를 더 안해도 되고 놀수있으니 불어나는 물을보고 친구들과 함께 은근히 신나고 기뻐했던 악동의 추억이 있습니다. 교실밖 매일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넘치면 좋겠다 하고~ 그 물이 넘쳐 못건너갔던 시냇물이 강물이되고 수많은 강물이 바닷물이 되고~ 우리의 인생과도 같지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 작가 노먼 맥클린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은 자연과 가족, 신앙 속에서 사랑은 고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이해보다 포옹 품음이 깊은 구원임을 깨닫게 하고
말로는 구원할 수 없어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남는다는 것을 깨닳게 합니다.
철학자들은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은 늘 변하고, 우리도 늘
변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니체는 인생을 건너야 할 강으로 보고, 인간은 ‘초인’을 향해 건너가는 존재라 말했지만, 그 여정은 늘 외롭고 위태로웠습니다.
명화 속에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볼수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는 평생 물과 다리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속 강은 잔잔해 보이지만, 사실 그 당시 모네의 인생은 가난과 비난, 빚이라는 거센 물살 속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강 위의 다리를 반복해서 그립니다.
왜일까요?
강은 두려움이지만, 다리는 건너갈 수 있다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모네에게 다리는 “기다리고 버텨내면 반드시 다음 좋은 세상이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또 다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강과 다리를 사랑했습니다.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라는 깊은 강을 건너다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다리는 늘 단단히 놓여 있습니다.
삐뚤고 거칠지만, 분명히 건너갈 수 있는 길입니다.
고흐는 말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강이 깊다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흔들려도 건너갈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넓은 강을 만납니다.
앞에는 물살이 거세고, 뒤에는 돌아갈 길이 없고, 주변을 둘러봐도 배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뛰어들까? 돌아갈까? 아니면 누가 다리를 놓아주기를 기다릴까?”
성경 속 인물들도 각자의 강을 건넜습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들었고, 여호수아는 요단강 앞에서 발을 먼저 내디뎠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 빠져 모두를 웃게 했지만, 사실 그는 도전하지 않았다면 물에 빠질 일조차 없었을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강을 건너는 힘은 근육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결론을 냅니다.
“모든 강에는 근원이 있다. 그 강의 시원 시발점으로 가면 길은 반드시 열린다.”
인생의 넓은 강을 건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내가 수영 실력을 키우는 것도, 물살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길을 만드신 분께 길을 묻는 것
이미 놓아주신 다리를 믿고 편안하게 건너는 것입니다.
강 위에 이미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의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오늘 여러분 앞에 놓인 넓은 강은 무엇입니까?
경제의 강입니까, 관계의 강입니까, 건강의 강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면 강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으로 건너는 다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길과 다리는
이 땅의 문제를 넘어
은혜와 축복 속에서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오늘도 그 다리를 확신과 믿음으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건너는
지혜로운 인생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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