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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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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은 평화의 기쁜 소식이다
- 우리를 화목자로 만드셨습니다.
- 화목의 직분자로 세우셨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5:14-21)

 

예수님의 오심을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9장 6절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고 하시며 천군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성탄소식을 전하면서 하나님께 찬송하여 이르기를 누가복음 2장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평화로다”라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탄에 오신 주님은 평화의 왕이시며 사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구주로 죽으실 때 그 보혈의 피는 엡2:13절, 롬3:25, 요한일2:2, 골1:20절, 롬5:11,18에 “그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이 땅과 하늘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화목이라고 하는 말씀이 5번 거듭 나타납니다. 화목이란 말은 지금 말로 알아듣기 쉽게 화해라는 말입니다. 화해란 피차에 멀어졌던 이들을 다시 가까이 해서 화친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해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중심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 기독교 복음은 화해의 복음입니다. 이 시간 이 화해의 기쁜 소식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Ⅰ. 하나님은 화해자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시요, 통치자시요, 보존자이십니다.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요. 피치자(被治者)요, 피존자(被存者)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과 빛의 하나님이요, 공의와 긍휼(矜恤)과 자비가 풍성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으신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였고 범죄 하여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도피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냉담한 태도를 가지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는 적의를 품고 사는 사람도 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큰 담이 싸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큰 구렁텅이가 그 두 사이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인간이 먼저 화해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화해를 구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신 까닭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화해를 구하십니까? 여기에 기록하기를『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라고 했습니다. 무슨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려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성육신의 비밀과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진리는 제한된 인간의 지력으로 해득하기란 물론 어렵습니다. 우리가 알지마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게 된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가요?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이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란 고물 쇠 덩어리를 용광로에 넣어서 주인이 원하는 멋진 재품으로 뽑아 낸 것 누가 보아도 새로운 것이 되게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를 근본적이고 본질적으로 바꿨는데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로 변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18절 下에 “그가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19절 中에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비밀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Ⅱ. 화목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18-19절)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셨으니 우리 인간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죄를 회개하고 돌아올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20절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과 같이 되리라." 그는 죄인을 부르십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크신 두 팔이십니다. 십자가가 모든 죄인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습니다. 간절합니다. "오라, 오라, 죄 있는 자들아 나아오라, 하나님과 화해하라." 우리가 다 하나님과 화해하였습니까? 아직도 하나님과 멀리 계시는 이는 없습니까?

아직도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사는 이는 없습니까? 옛날 동양의 성현들도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逆天)자는 망한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해야 우리가 금생과 내생에 바로 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라" 이것이 첫째입니다.

 

20절하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를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는 하나님을 향한 의지와 노력 그리고 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축복입니다. 새롭게 산길을 열어 주셨으니 하나님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2. 세상에 화목의 사신으로 파송하셨습니다(18,19).

 

인간 사회에 불화와 불목과 분쟁과 분열이 얼마나 많은 것은 우리가 다 체험하고 목도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 뿐 아닙니다. 단체와 단체, 계급과 계급 사이에, 정당과 정당 사이에,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불화와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보훈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5:23-24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엡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속히 화해하라" 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는 아무개와 화해할 마음이 있기는 하지마는 저가 먼저 말하지 않는데 왜 내가 먼저 말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 다른 사람도 꼭 같은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팔려가 숫한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여러 해 후에 형들은 크게 흉년을 만났습니다.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갔다가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격으로 그 곳에서 요셉을 만났습니다. 내가 요셉이란 말을 들을 때 형들은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하는 말이 당신들이 오래 전에 나를 애굽에 팔았다고 무서워 마시오. 근심하지 마시오, 나를 이 곳에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요셉은 형제간의 불화로 그런 큰 고생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형제간의 불화는 그의 말이 불화를 불식시키고 화해시킬 수 있는 귀한 역할을 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문필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분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발꿈치를 향수로 발라주는 앉은뱅이 꽃의 향기와 같다" 용서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가장 고귀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만 충심으로 남의 죄를 용서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실 때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가지 종류는 어디를 가나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요, 다른 한 종류는 어디가나 싸움을 끄는 사람입니다. 즉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싸움 말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에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갈멜이란 곳에 가서 살 때 그 지방에 나발이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따라온 청년 약 육 백 명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식량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다윗이 자기의 사람 십여 명을 나발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반년이 넘도록 살면서 당신의 양 한 마리 해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주지 않더냐? 그런데 우리가 지금 식량이 덜어졌으니 좀 보태 달라" 고 부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부하들이 나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발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인고? 요새 상전을 떠나서 도망쳐 다니는 이들이 많다더군"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청년들이 돌아와서 그대로 다윗에게 보고했습니다. 다윗은 분해서 칼을 차도록 하고 사백 명을 무장하여 인솔했습니다. 그때에 나발의 목자 중 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급히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에 그 현명한 여인은 그 말을 듣고 남편 몰래 여러 필의 말에 음식물을 가득 싣고 자기가 앞서서 나귀를 타고 다윗을 향해 갔습니다. 고개를 넘어오기 전에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만나 절을 하고 간곡히 빌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내 남편 나발이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윗의 노가 풀려서 그 음식물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자 보세요. 만일 그때에 아비가일 같은 지혜 있는 여자가 없었던들 그날 무슨 일이 생겼겠습니까? 나발의 가족과 목자들과 재산이 전멸을 당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했다고 할 때 다윗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실은 다윗에게 손해 준 것도 없는 이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 있고 현숙한 여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참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사업에 그렇게 분주해도 자기 고향에 있는 맨스필드라고 하는 친구 백작의 가정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서 권면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나이 예순 세 살이었습니다. 고향까지 가서 밤새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말을 듣고 형제간에 화해를 했습니다. 하루 저녁 더 자고 이튿날 떠날 계획으로 잠들었다가 그날 저녁 병들어 그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은 영적 견지보다 사회적 실정을 살펴보나 세계정세를 관찰할 때 화해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화해의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모든 사람과 화해하여 불화 많은 땅에 나가서 화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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