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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찬송하는 사람들(행1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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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 기도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응답위에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줏힙니다.

  기도와 찬송하는 사람들(행16:19-34)  20191201

 

12월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느낌이 들고 우리는 하루 하루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이 삶 자체가 기적 같은 삶이요 신묘막측한 인생입니다. 역사적으로 계절적으로 전환점을 돌고 있는 이때 우리는 어떻게 넘고 달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부름 받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럽으로 복음이 확산되는 새로운 사역의 전환점을 넘고 있는데 기쁨도 감사도 있지만 어려움과 고난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그 일행은 성공적으로 넘으면서 큰 공감을 주고 있습니다.  

 

 

Ⅰ.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19-24절)

 

분명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생동감 있게 만나는 경험을 하였고, 환상가운데 사명을 감당하고 있던 것을 과감히 중단하고 마게도냐로 가서 빌립보에서 전도하고 선교의 길을 열고 있던 가운데 루디아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면서 거처도 해결되었고 복음의 열매를 맺기도 하면서 확신과 희망을 갖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계속 괴롭게 하니 바울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 쫒아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이 로마인이 사는 곳에서 듣지도 못한 풍습을 전한다는 이유를 들어서 고소를 당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경제적으로 손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도 그냥 편안하게 들어간 것이 아니라 본문을 보면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고 했습니다. 옷을 그냥 벗긴 것이 아닙니다. 찢어서 벗겼다는 것은 험악한 분위기 가운데 폭력을 동원해서 찢었다는 말입니다. 벗은 몸에 매를 쳤는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많이 쳤습니다. 온 몸은 찢기고 터져 피가 나고 부러지고 했을 것입니다.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발에 차꼬를 든든히 채워 꼼짝 못하게 했습니다. 아파서 신음조차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그런 매를 맞고 갇혔습니다. 그렇게 매를 맞고 발은 차꼬에 채워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한 바울과 실라 인간적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고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겠습니까? 불평과 원망 그리고 낙심과 절망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달게 받고 고생을 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만 그것도 아니고 기도하러 가다 선한 일을 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처신하고 있는가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Ⅱ.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25절)

 

  진정한 신앙인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낙담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믿음으로 기도하며 찬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충분히 공감도 갑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부터 우러 나오는 기도와 찬송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 한밤중 까지 곤고함 속에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한 전도서7장14절에 “형통한 자가 있느냐 기뻐할 것이요, 곤고한 자가 있으냐 저는 재고할 질지니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곤곤한 가운데 이제까지 신앙생활과 선교의 사역자로 일하면서 생활을 돌이켜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을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그리고 빌립보 지역에서 어떻게 처신을 하였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먼저 간 신앙의 사람들과 예수님을 생각하였겠죠.

 

욥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처럼 나오리라”는 말씀과 요셉의 고난 특별히 감옥에 들어간 것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결국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는 지름길이 되었으며 결국 자가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보내셨음을 깨닫고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구원하도록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큰 희망과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보았을 것이며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인하여 결국 만인을 구원하시는 일들을 생각하면서 바울과 실라는 한 밤중까지 이런 저런 생각 속에 한없는 위로와 믿음 그리고 소망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2. 기도하게 됩니다.

 

야고보는 약5장에서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니라”고 한 것처럼 기도하고 싶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 속에 분명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왔으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그 마음을 묻고 많은 대화를 하였을 것이며, 당장 인간으로서 힘들고 아픈 육신을 입고 있는 바울은 주님께 도와달라고 “너무 아파요 힘들어요 답답해요...”의 기도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당신의 부름 받은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풀어주시고 길을 열어 달라고 매달렸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분명 응답과 대답이 있었겠죠. 그 감옥에 있는 어려움에 주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응답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원하시려는 비밀도 말씀하여 주실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바울과 실라는 비록 힘든 가운데 있지만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큰 믿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그 마음속에 감사와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찬양입니다.

 

3.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응답과 기쁨은 찬송으로 이어지고 터져 나오게 됩니다. 누구에 의해서도 억지로도 아닌 자연스럽게 그리고 감격으로 성령님의 주시는 선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응답하시는 하나님, 다윗의 고백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더 큰 구원과 역사를 이루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하여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암울하고 답답한 일을 만나고, 감옥과 같은 환경을 만나면 근심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기도하며 주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찬미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방법이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됩니다.

  유다의 왕들을 여호사밧이나. 아사왕이나 히스기야 왕을 보면 외적의 침략이 있어서 나라가 사면초가와 같이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졌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엎드렸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물리쳐 주셨고, 전쟁에서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부르짖을 때 이미 움직이셨고, 역사하기 시작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찬미와 기도가 해답입니다. “울고 있는 형제여 왜 찬송을 잊었는가 어둠속에 찬송은 기적을 부른다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 고통의 문을 찬송 찬송으로 찬송 찬송으로”

 

하나님은 기도와 찬송하는 사람들에게 응답위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 기도와 찬송은 바울과 실라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듣더라”라는 표현은 야유를 보내고 난리를 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이 그 기도와 찬송에 공감을 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조용히 듣다가 다 같이 그 기도와 찬양에 동참하는 빌립보 감옥의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무리들에게 전도할 기회가 된 것이죠. 할렐루야

 

 

Ⅲ. 응답은 기적으로 나타났습니다(26-34절).

 

  고통 가운데 신음 가운데 바울과 실라는 기도와 찬미를 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처음부터 기도와 찬미로 감옥의 문을 열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도와 찬미를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와 찬미는 하늘 보좌에 상달되었고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으로 감옥의 문을 열고 그들의 매인 것이 풀려졌습니다.

 

  기도는 기적의 문을 여는 비법입니다. 페르시아의 천일야화 중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알리바바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도적들을 만나 나무위에 숨어있었는데 도적들이 큰 바위 앞에 서서 “열려라 참깨!!”하자 큰 바위 문이 열리고 그 굴속으로 도적들이 들어가자 문이 닫혔습니다. 잠시 후에 도적들이 그 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잠시 후에 알리바바가 시험 삼아 큰 바위 문 앞에 서서 외쳤습니다. “열려라 참깨!!” 그러자 큰 돌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도적들이 훔쳐다 쌓아 놓은 온갖 보물과 금화들이 가득하였습니다. 비밀열쇠를 알고 있는 한 그 동굴 속의 모든 보화는 알리바바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키라고 해서 자물통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춘계 심방을 하면서 이문희 집사님의 회사에서 개발한 디지털 키에 대해서 설명을 들으면서 신기했었는데 2000년대의 디지털 세상보다 수 천년 앞선 페르시아에서는 이미 “보이스 키!!”음성인식 자동 열쇠가 보급되었나 봅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가로 막혀 있는 거대한 바위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보화를 내 것으로 만드는 보이스 키는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열려라 참깨!”입니다.

  기적을 여는 열쇠는 아주 오묘하고 신비한데 숨어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 키를 주셨습니다. 사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매뉴얼도 필요 없습니다. 어려운 비법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매뉴얼도 없습니다. “열려라 참깨!”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런데 왜 “참깨”인지 궁금합니다. 들깨도 있는데 말입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쉽습니다. 하지만 쉽다고 해서 그 성능이 보잘것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도 그렇습니다. 여호사밧왕이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을 대항해서 전쟁터에 나가 싸우려 할 때 여호사밧은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서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온 암몬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들을 치게 하시니 저희가 패하고 피차 살육하였다고 대하 20:21-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송의 힘은 원수를 물리칩니다. 우리를 삼키려는 악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내 입에서 기도와 찬송이 나오는 순간 우리들의 보기에 견고할 것 같은 옥터와 같은 문제는 흔들립니다. 그리고 옥문과 같이 닫쳐진 것이 열립니다. 차꼬와 같이 묶인 것이 풀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은혜를 받고 자기를 지키던 간수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아 세례를 받고 큰 기쁨의 가정이 되고 빌립보 교회의 첫 성도가정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일들이 어렵고 힘들고 고난스럽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 또는 고난을 통해서 신비로운 일을 이루어 가시려고 계획을 세우시고 계시는 중입니다. 바울을 빌립보 옥에 던져 넣은 일을 통해 바울은 빌립보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해 내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내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면서 때로는 순경으로 미풍을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역경으로 우리의 삶에 태풍을 불게도 하시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어 가시는 중이십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와 찬송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나다. 기도와 찬송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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