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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더 좋은 본향을 향해 가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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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아브라함의 믿음 :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더 나은 기업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갔습니다(8).
Ⅱ. 사라의 믿음 :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11-12).
Ⅲ. 그 가족들의 믿음 :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장막생활(9-10, 13~16절)

더 좋은 본향을 향해 가는 믿음(히11:8-16)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정겹고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고향에 묻히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그런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육신의 의 진짜 고향을 지역을 넘어 저 하늘나라인 것을 알고 사모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 아브라함과 그 가족이 어떻게 육신의 고향을 떠나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고향을 사모하며 큰 나라(영토 국민 주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은혜 나누기를 바랍니다.

 

 

Ⅰ. 아브라함의 믿음 :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더 나은 기업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갔습니다(8).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을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신 바벨로니아의 수도 우르였기에 정치 경제적으로 대단한 지역에서 아브라함은 우상과 연관을 갖고 숭배를 하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임하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고 자기 고향에서 75년을 살았습니다. 집안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산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을 떠나라고 하시니 이건 보통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는가요?

창 12: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11: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목표’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목표가 생기면 물체는 움직입니다. 그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운동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가 물체로 하여금 목표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바라보고 움직이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목표를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룰 때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한해를 순종하며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혀 가보지 않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시고 가게 하시며 또한 기업을 보여주시고 그 기업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보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자연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것을 얻게 됩니다.

 

 

Ⅱ. 사라의 믿음 :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11-12).

 

아브라함에게 기업이 땅이었다면 그 아내인 사라에게 있어서는 아이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저 땅만으로도 족했습니다. 또한 아내인 사라가 아이를 못 낳았을 때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낳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라는 달랐습니다. 사라에게 기업이란 땅이나 건물이나 토지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자신은 너무 나이가 많고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도저히 자녀를 낳을 형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잉태하는 힘’이었습니다.

11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현실과 생리적으로 늙고 단산했다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 이유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쁘시다는 말은 믿음직스럽다,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약속하신 이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력했습니다. 몸을 만들었고, 합방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녀에게 잉태하고자 한다는 것은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잉태하였습니다. 그녀가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잉태하는 힘은 어려움 속에 있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에게 이 잉태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취직에 실패한 구직자에게도 이 잉태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준비하여 마침내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업가에게도 이 잉태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 때에 하나님이 참으로 미쁘시다고 믿는 그것을 의지하는 사라와 같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Ⅲ. 그 가족들의 믿음 :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장막생활(9-10, 13~16절)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그 땅에서 살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서 살 사람임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고,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장막에서 그렇게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척박한 땅 가나안의 남부 네게브에서 나그네처럼 장막에서 그렇게 불안하게 살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 곳에서의 고달픈 삶을 기뻐하며 환영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향보다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닌 영원한 성 하늘의 예루살렘을 바라보았습니다.  

지상의 성보다 더 아름다운 하늘의 예루살렘을 바라보았기에 이런 힘들고 고달픈 삶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믿음이 없었던 자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그들이 있던 곳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 곳을 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장막에 거주하며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지만 그들은 족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안정된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왔으니 외국인과 나그네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평생을 장막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동안은 가인의 전통을 이어 받아 한곳에 집을 짓고 높은 성을 쌓고 문명 생활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브라함은 어느 곳에 가든지 장막을 치고 사는 신세가 됐습니다.

(히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주목해야 할 것은 ‘믿음으로’ 아브라함뿐만이 아니라 그의 자손인 이삭, 야곱, 요셉 등 모든 족장들이 장막에 거류하였고 외국인으로,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가 되는 야곱이 훗날 바로 왕을 만났을 때 나그네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 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아브라함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소개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다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땅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한 채 장막에서 지내며 평생 이방인과 나그네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평생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 11: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렇습니다. 그들이 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더라면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돌아갈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돌아갈 시간도 충분했고 돌아갈 길도 알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면 환영해 줄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하지 안했습니다. 이 모든 마음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장막에 거주하며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을까요?

(히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 하셨느니라.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나왔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보신 분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러면 결코 안 됩니다. 결코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고도 영광된 나라를 바라보며 순례하는 나그네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 빠지게 됩니다. 영원한 고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선진들처럼 이 세상에서 장막에 거주하며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더 나은 본향에 이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성에 대하여 직접 하셨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계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이러한 본향을 바라보는 성도는 이 땅에서 비록 장막에 거하고 나그네로 살아도 구차하게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겁고 당당하게 삽니다.

평생을 믿음으로 사시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떤 권사님에게 자녀들이 좋은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초라한 집에서 살던 권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집을 지으려거든 대문은 진주로 만들고 벽은 보석으로 꾸미고 마당에는 황금을 깔아라.”

자녀들이 어이 없어하며,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런 집을 지을 수가 있겠느냐고 하자, 권사님은 “그렇다면 그만둬라. 나는 천국에 이미 그런 집을 가지고 있다. 곧 그곳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믿음인가? 이게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음송가 중에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저 멀리 뵈는 시온 성 하늘나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상의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더 좋은 기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순종하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던 아브라함, 단산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잉태의 힘을 얻어 결국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창대한 기업을 이루었던 사라 또한 비록 장막이지만 하늘의 예비한 성인 더 나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가족들의 믿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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