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5월 14일 수요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27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모셨다. '고(故) 함상섭 하사'가 그 주인공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부분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7사단 소속의 고 함상섭 하사로 확인했다.
이번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는 함께 발굴된 인식표에 새겨진 고인의 이름이었다. 국유단은 이를 바탕으로 고인의 병적부를 열람한 후 행정관서를 찾아가 유가족의 소재 확인을 요청했다. 관공서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유해 수습 마지막 날인 11월 25일 친손자를, 3일 뒤인 28일에는 아들을 찾아 유전자 시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부자 및 조부-손자 관계를 확인했다.
고인은 올해 여섯 번째로 신원확인된 호국영웅이다. 또한,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집단으로 발굴된 유해 19구(인식표 7개) 중 고 정인학 일등중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모신 국군 전사자는 총 254명이 됐다.
고인의 유해는 유해발굴을 경험했던 어느 한 대대장의 제보와 국유단의 전문 조사·발굴팀의 구슬땀이 있었기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육군 제7사단 예하의 대대장인 정준혁 중령은 지난해 10월 작전지역 지형정찰 간 지표면에 있는 방탄헬멧과 수통을 발견하고 국유단에 유해소재 제보를 했다. 정 중령은 동년 전반기에 실제 유해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에 이를 쉽게 넘기지 않았던 것이다.
제보를 받은 국유단은 전문 조사·발굴팀을 파견해 해당 지점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유해발굴기록병이 최초로 유해를 식별했고, 이를 본 발굴팀장이 함께 발견된 M1 소총 등 유품 출토 상황을 고려해 구획을 확장해서 발굴을 진행한 결과 추가로 유해 7구를 더 발굴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m 인근 또 다른 지역에서도 11구의 유해를 추가로 발굴했다.
고인의 유해는 두개골을 기준으로 연속성이 확인되지만, 하체 부분은 단절된 부분 유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해는 해부학적으로 엎드려진 모습이었는데, 다른 유해와 복잡하게 엉켜 있는 상태였다. 이로 볼 때 고인이 전사한 이후 급박한 전황 속에서 집단 매장됐다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1953년 1월에 입대한 후 국군 제7사단에 배치돼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 참전했으며, 치열한 고지전 속에서 정전 2일을 앞두고 전사했다.
고인은 1925년 10월 강원도 횡성군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49년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한 여성과 혼인해 1949년에 아들을, 1952년에는 딸을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이후 고인은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1953년 1월에 제주도 1훈련소로 입대했다. 훈련을 마치고 국군 제7사단에 배치돼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참전해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 정전협정을 불과 2일 앞둔 7월 25일에 전사했다.
당시 전투는 국군 제7·11사단이 금성지구(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해 전선을 안정시킨 공방전이다.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었던 그 시기에 고인은 적과 치열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5월 14일 수요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보훈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 대표인 아들 함재운 씨(76세)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멍한 느낌이 듭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상한 기분입니다. 단지 목이 멜 뿐입니다. 유해를 찾아준 국가와 국방부에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하루빨리 현충원에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보훈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6·25전사자(호국영웅)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6·25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상황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하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계신 유가족을 먼저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