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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칼럼> 옷이 날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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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1950년대 전쟁 후였다. 그때 사람들은 옷이 없어서 미국에서 보내준 구호물자 가운데 헌 옷을 줄여 입었다. 필자도 그랬다. 그리고 미국에서 지원한 분유를 물에 타서 마시며 자랐다. 그 당시는 한 끼 식사하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고 무엇이나 옷을 걸쳐 입으면 그만이었다. 모두가 가난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할 때도 코트가 없어서 청계천 7가에서 기성복을 지금 돈으로 3000원을 주고 사 입고 갔었다. 여러 해 후에 화란 유학을 갈 때도 군에서 입었던 장교복 코트에 검은 물감을 들여서 입고 갔었다.

 

옷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면, 거창고등학교를 세우신 전영찬 교장을 잊을 수 없다. 전영창 교장은 위대한 애국자요, 설교자이다. 당시 그는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와 동기 동창으로 미국 웨스턴 신학교 출신이었다. 그는 당연히 목사가 되어야 하고, 신학교 교수로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교수도 마다하고 목사가 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꿈은 젊은 청년 곧 고등학교 학생들을 철저히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 사상의 인물로 키워서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

 

전영창은 거창에 다 쓰러져가는 학교를 인수해서 거창고등학교를 만들고, 전국에 난다 긴다 하는 일류 선생님들을 모시고, 그 자신은 밤색 골덴 제건복을 입고 거름을 저나르며, 강단에 설 때는 불꽃같은 메시지를 통해서 청년들을 깨우고 신앙의 확신을 주었다. 그가 청년 시절에 결혼을 해야 하는데, 바지 저고리를 지어 입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이불홋창을 뜯어서 무명 바지 저고리로 만들어 그 옷을 입고 장가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1961년 '진주 봉래동교회' 전국 S.F.C 특강 때 내가 직접 들었다.

 

후일 1972년 내가 화란의 암스텔벤이란 조그만 집에 혼자 살 때, 어느 날 갑자기 전영창 교장이 화란에 모금 운동 때문에 왔었다. 그때 그는 여전히 밤색 골덴 재건복을 입고 와서 하는 말이 "정목사님! 하룻밤 재워주세요. 내가 내가 가진 달러($)는 공금이니 모두 학교에 보냈습니다. 

호텔에 갈 돈이 없으니 하룻밤 신세를 집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던 침대를 전 교장에게 내어주고 나는 거실 의자에 앉아 쪽밤을 잤었다. 그는 비록 옷은 제건복을 입었지만 신학자이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낮은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하나님 중심 사상과 세계를 향한 꿈을 심어주는 불같은 외침에 그의 옷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검, 절약, 검소한 삶을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실천하면서 귀한 인재들을 키워냈다.

 

한국은 지금 너무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음식이 남아 돌아가고 일 년에 버리는 음식만 15조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옷도 남아 돌아간다. 그 헌 옷이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와 가난한 나라에 구호품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의 패션계는 파리보다 더 화려하다. 나 같은 목사는 옷 입을 줄도 모르고 패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내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중에 깨달은 것은 대한민국사람들이 가장 옷을 잘 입고 멋도 있고 옷도 많았다.

 

지금 들리는 말로는 문 대통령 부인의 옷값에 대해서 말이 많다. 지난 5년 동안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전세기에 가고 싶은 데로 다 가신 분이었다. 그러니 전 세계 가는 곳곳마다 아름답고 좋은 곳이 많이 있었을 터이고, 그래서 옷이며 귀금속이며 사치품을 많이 샀을 것으로 본다. 보도에 의하면 상당히 많은 옷, 상당히 많은 값비싼 귀금속이 있다고 했으나 그 방면에 무식한 나로서는 여기 모두 열거할 필요가 없다. 그 돈이 천문학이라고 한다. 

하기는 권세 있고 돈 많은 사람이 뉴욕과 파리 런던 같은 쇼핑센터에 가서 자기 돈으로 사면 누가 말하겠는가마는, 알려진 바로는 우리 세금을 가지고 무슨 품위유지비니 하면서 지나치게 구입했단다. 그러니 뜻 있는 사람들이 옷값을 공개하라고 다그치니, 하는 말이 그것은 국가 기밀에 속한 것이란다. 그리고 그것은 15년 동안 공개 못한다는 법이라한다.

 

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세상은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날개 펴고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이었다. 대통령도 그 분도 모두 운동권 출신으로서 그 직에 있을 때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오대양육대주를 마음껏 누비며 다녔다. 무슨 외교적 성과가 있었는지? 중국 가서 혼밥 먹고, UN에 가서 텅텅 빈 회의장에서 혼자 종전선언했었다. 아마도 그 시간에 대통령 부인은 수행원들과 함께 뉴욕의 명품가를 돌아 보았을 것이다.

 

필리핀을 망하게 한 것은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사치병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평생 옷, 사치품, 구두에 올인했다. 특히 마르크스 정권이 무너지고 이멜다가 살던 집에 가보니 구두만 3,000 컬레였다고 한다. 문 정부가 입버릇 처럼 서민을 위한다고 했지만, 그 부인은 사치품을 모으는 데 열중했었다.

 

나는 1980년대 초에 이회장에 예배를 인도하면서, 초대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가 양말을 기워 신었던 것을 실물로 보았다. 지금의 대통령 부인과 너무나 대조되었다.

한국의 이멜다를 철저히 조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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