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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승 교수 칼럼>교육감이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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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일하기를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다. 이완될수록 신세타령이 나온다.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서 일해야 한다. 일할수록 보람이 있고 힘이 생긴다. 일의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지혜가 생겨 요령과 창의적 개선이 되면 신이 나고 부과이득이 따른다. 행운까지 찾아오면 금상첨화이다.

성실하고 진실된 사람에게 기회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녀가 있고 제자들이 보인다. 후배들이 뒤에서 수군댄다든지 후세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직책을 맡으면 잘해야 한다.

 

최근에는 ‘일하지 말자’고 조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격려해도 모자랄 판에 ‘바보 아니야 ?’ ‘일하러 태어났어 ~ ’ 비아냥댄다.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직장에서는 일하는 것보다 힘을 모아 기업가들과 투쟁하는 것이 득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업무가 서로 다른데 노동자가 사용자를 간섭하더니만 갑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노동대표자의 과도한 악용사례는 눈살을 찌 뿌리게

한다. 기업가는 노총에게 별도의 당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협상의 댓가만으로 끝나는게 아닌 것 같다. 노총은 정치가들과 비슷해졌다. 무엇도 해주고 무엇을 고쳐서 좋은 기업 만들겠다고 한다. 누가 사용자인지 모를 일이다.

물러날 때 보면 그들의 정체는 여지없이 혐오가 드러난다. 본인은 그 자리를 차고 있으면서 또박또박 급여와 각종 혜택을 받아가지만 정작 일은 하지 않는다. 부업이 주업이 된 것이다.

정치가들은 6개월 이상만 근무해도 20년 이상 박봉으로 근무한 공무원들처럼 연금을 받는다. 연금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니 할 말을 잃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외치는 정당은 제정신인가 싶다. 유럽 예를 들어가며 한국이 잘못되었다고 역설한다. ‘4일 근무 할 때가 되었단다’ 듣자 하니 호감이 간다. ‘일하지 않아도 급여가 나온다’는 프레임은 거짓임에 틀림이 없다. 속이고 있는 것이다. 쟁취해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라고 말하는 프레임도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거짓임이 입증되었다.

 

책임자도 아니면서 남의 일 가지고 ‘옳다’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공산주의 화법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공산국가들은 못산다. 자기가 그 위치에 가면 개선하여 고치면 될 것을 안 고친다. 표몰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인 일도 아닌데 ~ 대신 외치는 이유가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정상이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도록 만들 수는 있으나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데 그 일을 하자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격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발전과정을 보면 제도를 확확 바꾸는 자들 중에 누가 잘못하는 것인지가 보인다.

 

80세 이전 세대는 고교이상 졸업자가 1%도 안된다.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양반계급이 아니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분제도가 사라진 후 모든 국민은 자녀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히 여기고 가르쳤다. 국가위정자들도 교육에 힘쓰기 시작했다. 적은 돈마저 없는 가정은 순번을 정해서 형제 중 대표를 가르쳤고 도움받은 그 형제는 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고등학교만 나오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운 인력이 많아지자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국가지도자는 종자돈을 고루 나눠주기보다는 몇몇 사람에게 성장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차별을 따지면 지적은 되겠지만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현대, 삼성, 대우, 포항제철이 혜택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기업을 키웠으며 해외로 진출하여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더 많은 일자리와 돈이 들어왔다. 성공한 그들에게서 일은 ‘노동’ 이 아니라 ‘보람’이라고 말한다. 오랜 군 생활 중에 미군과 훈련할 때마다 그들을 늘 부러워했다. 미 군함과 장비는 물론이고 급여와 부식과 군복, 복지시설을 보면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난 그들보다도 더 용맹하며 싸움을 잘하려고 노력한 젊은 시절을 기억한다. 군인들은 그랬고 기업가들도 동일한 마음이라고 본 것은 ‘산업전사’라는 용어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이 대규모 간첩단을 보내며 전후방으로 위협을 가하자 일하면서 싸우자는 슬로건이 나왔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최신예 군함이 들어와서 신형군함을 타기 시작했고 내 급여는 올라갔으며 각종 복지시설은 좋아졌다. ‘월화수목금금금’을 보람으로 여기며 농담하던 게 지금은 외면당한다. ‘보수꼴통’이라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는다. 일만 아는 바보스러운 인생은 너의 인생이지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눈치를 준다. 욕하는 대상이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며 그분이 학비를 대주었는데 ~ 상관하지 않는다. 어디서 이런 생각이 나왔을까? 가정이나 사회가 아니라면 ‘학교이다’ 교육이 ‘자기부정’의 이상한 사고력을 주입한 것이다.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선생이 가르친 것 아니겠는가? 공산주의 이론에서 본 적이 있어서 확인해보니 거기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나의 옛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호되게 호통치며 뼈있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힘은 들었어도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게 사실이다. 30여 년간 미군과 훈련할 때마다 공통된 질문을 하곤 했다.

 

10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는 한국해군의 실력은 ‘세계 6위’란다. 유무형 전력의 합계이니 가까운 일본해군은 유형전력면에서는 우리 해군보다 월등하다. 무형전력을 합치면 ‘한국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주관적일 수는 있어도 일본부대를 방문하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자세로 살다가 신장비 지급 받고 날아갈 듯 자부심이 생겼다. 무형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군은 종이호랑이가 될 뿐이다. 조금만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 곡 소리가 나온다니 큰일이다.

 

언제부터인가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 일방적으로 가르친 것이 하향 평준화 된듯 싶다. 화합과 협력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경쟁’은 필요하다. 능력 있는 동료를 보고 배우면서 선의의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러기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격언은 아직 유효하다.

 

한국의 잠재 성장율이 10% 이상 시대에서 5%로 떨어지더니만 2.3% 대로 떨어졌다. 5%대로 향상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를 기대하며 맞춤식 새 옷을 꺼내 입어야 하겠다. 교육감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교과서도 만들고 알아서 자녀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정신이 우선인지 물질이 우선인지~, 책임과 질서와 봉사를 강조하는지~ 개인의 권리와 입장을 더 강조하는지~, 공산주의 정신인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정신인지~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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