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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칼럼>벙어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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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총신대학교 양지 캠퍼스는 23만 평이다. 신학대학으로는 세계 최고의 크기다. 사당동 대학 본부와 합하면 전 세계에서 그 숫자와 건물도 단연 일급이고, 교수진들도 최고로 포진되어 있다. 나는 지난 64년 동안 두 캠퍼스의 탄생과 발전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양지 캠퍼스 왼쪽 언덕 위에는 <소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황해 노회에서 기금을 모아 한국 최초의 교회, 송천 곧 기와집 솔래 교회를 옛날처럼 복원해서 지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순교자 최봉석 목사님의 순교비가 있다. 최봉석 목사님은 흔히 최권능 목사라는 별명이 있는데, 참으로 특이하고 못 말리는 전도자였다. 그는 불같은 전도자였고 참으로 기이한 목사였다.

최봉석 목사는 1869년 9월 7일, 평양에서 최상린 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93~1900년까지 평양 관찰사 서기로 봉사하였고, 강동 현감 구타 사건으로, 삭주로 귀양가 그곳에서 예수를 믿어 1903년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05~1907년까지 성경 매서인으로 일했다. 예수를 영접한 지 7년 되는 40세 때, 평북노회 전도자가 되어 벽동 교회에 시무하면서 평양 신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공부보다 전도에 주력하였기에, 수업 시간 외에는 <예수 따라 천당! 마귀 따라 지옥!>을 외치며 곳곳을 누비며 전도했다. 그러니 그의 성적은 엉망이었다. 성경은 60점, 조직신학 15점, 구약 신학 25점 등으로 계속 낙제하여 졸업을 2년이나 연기되었다.

 

한번은 라부열 교장이 수업 중에 “학생 중 아무나 기도하시오!” 하니, 최봉석 전도사가 “성령이여! 라부열 교장을 감화하사 졸업장을 주게 해주시오!”라고 기도하고 ‘아멘’ 한 후, 대뜸 “교장 선생님! 제 졸업장 주시오!” 하니 라부열 교장이 “무슨 졸업장?”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최 전도사는 “좀 전에 <아멘> 했지 않았습니까?” 이에 라부열 교장은 “준다고 아멘은 했지만, 언제 준다는 말은 없어소!”라고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최 전도사는 시험 전날 준비 겸 철야 기도한 후 시험을 치렀지만, “성신도 시험에는 쩔쩔매나 봅니다”하고 백지를 내고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그는 2년 후에 겨우 졸업했다. 그러나 최 목사의 성적은 별로여도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하는 일에는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하루는 지나가는 채필근 목사에게 “예수 믿고 천당!”이라고 크게 외쳤다. 그랬더니 “최 목사님! 나 채필근 목사외다”라고 했다. 그러자 “누가 채 목사인 줄 몰라? 목사가 되었으면 전도 해야지, 왜 벙어리로 살아!”라고 호통을 쳤다.

 

 1938년 9월 19일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최 목사는 분개하여 「신사 참배는 분명한 죄요, 교회에 일본 우상을 들여놓을 수는 없소! 일본의 태양신은 하나님의 원수요, 신사참배를 결의한 총회는 사탄의 총회다!」라고 외치니, 일제가 그를 그냥 둘리 없었다. 경찰은 독립운동과 신사참배 반대운동 등 6가지의 죄목으로 그를 구속했다. 최봉석 즉 최권능 목사는 결국 신사참배 초기에 검속되었고, 1939년 9월에 재차 투옥되어 또다시 5년간 모진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3.1절을 기해 순교가 임박함을 알고 40일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금식 기도가 끝날 무렵 거의 사경에 이르렀을 때, 평양 기흘 병원 <장기려 박사>가 마지막으로 치료하려 했으나, 이미 그의 몸은 미라처럼 굳어 있었다. 최봉석 목사에게 달려온 산정현 교회 성도들에게 보호를 받는 중, 1944년 4월 15일 장기려 박사에게 “하늘나라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하며 찬송하며 순교의 잔을 마셨다. 진리 파수! 그 시대의 교권과 정권을 향해 불호령을 했던 최권능 목사가 너무도 그립다.

 

 이 세상에는 자칭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설교자가 대부분이지만, 진리를 전하지 못하는 벙어리 목사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최봉석 곧 최권능 목사는 힘차게 복음을 외치며 증거했다. 그래서 나는 양지 캠퍼스 소래교회 옆에 최봉석 목사를 기념하는 <순교 기념비>를 35년 전에 세우고, 비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최봉석 목사 순교 기념비문
1평양신학 육회졸업 영적거장 선한목자
예수천당 외치시며 방방곡곡 전도하고
벽동교회 목회자로 어린심령 보살피며
만주벌판 암흑땅에 칠십교회 세우시다
2일제술책 회유에도 믿음절개 지키시며
신사참배 일제요구 단호하게 거절하고
평양감옥 육년동안 모진고문 이기시어
일흔다섯 노구에도 능력으로 승리하다
3일구사사 사월십오 순교의잔 마시옵고
하늘나라 전보왔다 크게외쳐 감격하며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누릴 영광일세
순교의피 뿌리시고 주께영광 돌리셨네
4예수천당 최권능이 순교한지 사십육년
한국교회 바른복음 진리수호 지키려고
총신동산 성지에다 순교정신 계승코져
돌하나로 여기세워 하나님께 영광일세

 

1990년 11월 28일
대한기독교 순교자 기념사업회 고문
전 총신대 총장 정 성 구 목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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