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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칼럼>평신도가 목사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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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오래전에 고(故) 옥한음 목사는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가히 한국교회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부흥의 운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옥 목사는 평신도를 깨워 역동적 자원을 만들었고, 교회는 크게 부흥되었다. 그런데 평신도를 깨우는 운동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평신도 신학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가톨릭의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신학자요, 가톨릭의 에큐메니즘에 앞장섰던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55)였다. 그는 신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의 직제는 매우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평신도도 사제의 도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이단적인 논리였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1953년에 <평신도 신학 서설, Talons Pour Une theologie du Laicat)를 출판해서 세인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에 뒤질세라 1960년에 네덜란드의 세계적 선교 신학자인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 박사가 <평신도 신학, Het Vergeten ambt in de Kerk, Plaats en roeping van gewone gemeentelid)을 발표했다. 그 후에 여기저기서 평신도는 그냥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이른바 성직자 못지않게 사명과 소명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7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평신도는 모두 수동적이고, 교회 직분만 잘 감당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평신도의 역할과 사명이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면서 평신도의 잠재력을 일깨워 훈련하고, 성경적이며 교리적 체계를 확립하여 교회와 가정,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역동적인 삶을 살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교회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동시에 평신도를 깨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른바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잠자던 평신도를 깨워 복음 전도의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의 견인차가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 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결실을 맺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마다 영적 상황이 똑같지 않고, 평신도의 입장과 교회의 분위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 훈련은 크게 고무할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평신도들이 너무 깨어나서 목사들이 설교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평신도들은 설교 시간에 스마트 폰을 통해 실시간 검색을 할 뿐 아니라, AI 쳇gpt를 통해 단상에서 전하는 담임 목사의 설교가 참된 설교인지를 검색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누구든지 정보를 실시간 교통할 수 있다. 집에서도 스마트 폰으로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또는 미국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까지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말하자면 오늘의 평신도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화되었고 지적 수준도 높아졌다. 한마디로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목회자들은 과거 인문학적 설교나 감성적 설교 또는 윤리적 설교로는 평신도를 지도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니 지금 시급한 것은 목회자가 깨어날 때이다. 우선 성경 계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령의 사역이 함께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신학을 공부했다고 또는 강도사 고시를 합격했다고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신도가 목사를 깨운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네덜란드의 대 설교자요, 저널리스트요,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의 이야기다. 그는 25세에 라이덴 대학교의 스콜덴 박사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때 그는 <칼빈과 존 라스코의 교회론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6세에 지방에 있는 베이스트(Beesd) 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참 젊은 목사였다. 그는 개혁 신학 최고의 학자 밑에서 공부했으니, 그의 설교는 웅장하고 조직적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이미 300년이 넘는 오래된 교회였다. 즉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세워진 개혁교회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카이퍼 목사의 설교는 그 교회 성도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 교회 여성도인 발투스(P. Baltus)는 카이퍼 목사의 설교를 거부했다. 이유는 젊은 카이퍼 목사의 설교에는 당시 19세기의 자유주의 적인 냄새가 났을 뿐 아니라, 오랜 전통을 지닌 이 교회 성도들에게는 거부감이 되었던 것이다.

 

여전도회 회장 격인 발투스는 아예 카이퍼 목사와의 악수도 거부했다. 그래서 카이퍼 목사는 발투스의 집에 심방 가서 ‘왜 저를 거부하십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때 발투스는 “목사님의 설교에는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이 없고, 돌트신경(Dort Cannon)이 없습니다.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돌아서세요!”라고 충고했다. 카이퍼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고, 완전한 정통 개혁주의 목사로 돌아섰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 밑에서 공부는 했지만, 그것은 논리적, 신학적 공부였을 뿐, 그의 설교에는 말씀을 향한 뜨거움과 감격이 없었다. 카이퍼는 한 사람의 평신도의 충고로 말미암아 목양의 현장에서 다시 깨어났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키는 위대한 사역자가 되었다.

 

목사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발투스라는 평신도 여성도 대단했지만, 그녀의 충고를 듣고 철저하게 낮아져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운동의 별이 되고, 성령 충만한 위대한 칼빈주의자가 된 A. 카이퍼의 겸손을 이 가을에 다시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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