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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욱 교수 기고>예술가의 삶에서 배우는 지혜, 은혜를 담는 가장 큰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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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북유럽 노르웨이 국민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대표작 페르 귄트의 제2조곡 ‘솔베이지의 노래’는 시간을 초월한 기다림의 서사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생을 바쳐 기다리는 노래 속에는, 비단 한 개인의 순정을 넘어 숭고한 믿음의 자세가 아로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우리네 ‘망부석’ 설화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다림은 가장 깊은 사랑과 믿음을 증명하는 시금석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기다림의 가치를 잊은 듯하다. 3분을 참지 못해 즉석 식품을 찾고, 단 하루의 배송 지연도 참지 못해 고객센터를 들썩이게 하는 ‘총알배송’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속도지상주의는 우리의 신앙마저 조급하게 만들어, 마치 즉각적인 응답을 보장하는 자동판매기처럼 여기게 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의 여정은 초고속 열차가 아닌, 완행열차의 '슬로 리듬'에 가깝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내했다. 요셉은 억울한 옥살이의 고통을 13년간 견뎌낸 후에야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을 해했던 이들까지 품는 은혜를 베풀었다. 다윗 또한 사울 왕에게 쫓기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섣불리 왕관을 탐하지 않고, 묵묵히 신의 때를 기다렸다. 그들의 삶은 '오랜 숙성을 거친 기다림이야말로 인생 역전의 서막'임을 보여주는 장대한 드라마다.


하나님의 축복은 목적지만을 향해 질주하는 KTX가 아니다. 창밖의 풍경과 여유를 음미하며 나아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와 같다. 때로는 더딘 것 같아도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며, 그 과정에서 얻는 성찰과 인내는 결코 '반품'되지 않는 귀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축복이 ‘언제’ 오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보듬고 지혜롭게 시간을 채워나가느냐에 있다.


솔베이지가 노래로 기다림의 시간을 채웠듯, 우리의 기다림 또한 수동적 방치가 아닌 능동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나누고, 맡은 바 소임에 성실하며,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잃지 않는 하루하루가 쌓일 때, 기다림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배우자가 변화하기를, 자녀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일상의 모든 기다림은 우리를 더 큰 사랑과 은혜로 이끄는 훈련의 과정인 셈이다.


결국 기다림은 축복을 담기 위해 준비하는 그릇과 같다. 사랑과 나눔, 그리고 감사의 노래로 그 그릇을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오는 신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솔베이지의 노래처럼 깊고 풍요롭게 채울 것이다.


이 시대 우리에게 기다림은 더욱 절실한 가치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세상 속에서, 조급함은 우리 내면의 평화를 앗아가고 관계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이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을, 결과가 아닌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기다림의 순간들을 불평 대신 성장의 기회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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