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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근 칼럼> '너무 깨끗하게 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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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겨울을 바로 앞둔 만추의 계절입니다. 문득 노을이 붉게 물든 고향 마을 논에서 벼이삭을 줍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릅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레 모은 벼이삭이 넉넉지 않은 이웃에게도 전달되었을 때, 그 고단함 속에 피어났던 기쁨과 행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젊은 시절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기에, 그의 그림에는 늘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보는 눈'이 들어 있습니다. 그 대표작이 바로 <이삭 줍는 여인들>이죠.

 

넓은 들판에서 힘겹게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을 보며 밀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들이 굽힌 허리보다, 그 허리 뒤에 숨은 고단한 삶을 그리고 싶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 해집니다. 가난한 자의 등 뒤에는 늘 침묵하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법입니다.

 

“내가 덜 가지면 누군가 살아난다.”

 

성경에서도 '이삭 줍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허락된 아주 중요한 생명줄이었습니다. 유대 땅의 이민자이자 과부라는 삼중고를 가졌던 여인 룻은 베들레헴 남의 밭에서 남겨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룻이 감사하며 이삭을 주워 갈 때, 하나님은 보아스라는 '대박 스폰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자였을 뿐 아니라 마음도 부자였던 남자, 보아스는 이삭을 줍는 룻을 향해 측은지심과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일꾼들에게 이렇게 지시합니다.

 

"이삭을 너무 깨끗하게 줍지 말아라. 일부러 조금 흘려라."

 

이 말은 지금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이후 보아스와 룻은 결혼하여 다윗 왕의 조상이 되고,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이어지는 영광을 얻습니다(마태복음 1:5).

 

 

"내가 조금 덜 가지면 누군가 밥을 굶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제학이며, 은혜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회전문'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기억해라.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삭 줍기 정신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너무 깨끗하게 치우는 사람'을 칭찬한 적이 없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명기 24:19).

 

이삭 줍기는 단순히 곡식을 나누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자비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상징하는 중요한 성경의 관습인 것입니다.

 

남기고 가는 자락이 다른 사람의 내일이 된다.

 

사람은 어려운 이웃에게 남겨둘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더 가지려는 사람'보다 '조금 남겨두는 사람' 때문에 따뜻해집니다.

 

말도 너무 날카롭게 하지 말고 한두 마디의 여백을 남겨두면 그것이 사랑이 됩니다. 돈도 너무 꽉 쥐지 말고 조금 흘리면 누군가 살아날 힘을 얻습니다.

 

"이삭을 너무 깨끗하게 줍지 마라. 사람이 남기고 가는 자락이 다른 사람의 내일이 된다."

 

밀레가 그린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우리도 오늘 누군가의 굽혀진 허리를 조용히 끌어안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곳에 살짝 흘려놓는 삶, 그것이 바로 지혜이며, 감동이며, 배려이고, 신앙의 귀한 품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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